해당 글의 주인공 및 주역은 마비노기 세계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캐릭터(OC)입니다.
캐릭터의 설정, 관계 도용은 허가하지 않습니다.
캐릭터 설정은 실제 게임의 설정 혹은 플레이와 상이합니다.
이로 인하여 마비노기 설정과 충돌할 수 있으나, 설정오류 지적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마비노기 메인스트림 및 세계관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인물, 단체, 지역, 종교, 문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World Building
write by. UNUS
01 - 이름
왕가 :: 아튼 시미니
톨비쉬 프리무스 아발론 엘베드 데 아튼 시미니
Torvish Primus Avalon Elved de Aton simini
(28세) 그는 순수하고 완전하며 온전하며 무결한 왕족으로 태어나 차기 왕으로써 추앙받는다.
대공가 :: 고르도슈(예정)
발로르 베임네크 도니골 포모레 데 아튼 시미니Balor Béimnech Donegal Fomhoire de Aton simini(28세) 그는 왕족이되 인정받지 못하는 자였으나 개의치 않고 피와 힘으로 스스로를 증명하여 왕족으로 군림한다.
공작가 :: 신시엘라크, 우니쿠스, 포르투나, 비스콘티
** 포르투나, 비스콘티는 변경 가능함 임시로 둔 것일 뿐
파르스 사체르 에데사 데 우니쿠스
Pars Sacer Edesa de Unicus
(30세) 그는 그의 정체를 알든 모르든 모든 이들의 경탄과 찬사를 자아낸다.
이스 아우로라 에데사 데 우니쿠스
Eis Aurora Edesa de Unicus
(25세) 그녀는 그녀 스스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왕실의 여인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플로스 유니케 에데사 데 우니쿠스
Flos Unice Edesa de Unicus
(18세) 그녀는 그녀 자신이 고르는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르웰린 디비티에 아르후안 데 신시엘라크
Llywelyn Divitiae Arthuan de Cinnsealach
(20세) 아름다움으로는 보석에 견줄 만큼 눈부시고 몽환적인 청년으로 여겨진다.
필레인 하이데스 아케론 폰 테온
Philein Heades Acheron von Theon
(30세) 그는 행복했으나 행복을 잃었고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으리라 여겨졌다.
라세드 솔루투스 아케론 폰 테온
Lased Solutus Acheron von Theon
(27세) 그는 스스로를 구속하는 모든 책임과 지위따위에 얽매이지 않으며 하고자 하는 바를 잊지 않는다.
테오파니 에스포사 테베레 드 티나
Theofani Esposa Tevere de Tina
(26세) 여인의 몸으로 군인이 되었으나 인정받지 못한 것에 구애받지 않는 강인함을 가졌다.
라스 테낙스 테베레 드 티나
Rax Tenax Tevere de Tina
(26세) 유약하고 신경질적이지만 그 어느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는 고집을 가졌다.
로시아 마리아 테베레 드 티나
Rosia Maria Tevere de Tina
(18세) 길거리의 버려진 아이가 귀족으로 거두어지니 생에 이보다 더한 행운이 있으랴.
황러 이빙 제이 나인게이트
黄了 一饼 J. Ninegate(九蓮宝燈)
(26세) 대륙과 이국 너머, 먼 세계에서 온 속을 모를 장사치이나 숨겨둔 것이 많아 흠모와 두려움을 동시에 산다.
본명 리 쉔리 (李 玄离)
로간 라딕스
Logan Radix
(22세) 평민 출신 군인, 어린 나이에 능력을 인정받아 빠르게 승진한 왕국 근위병.
독고 시우
獨孤 試佑
(20세) 황러와 비슷한 동방 너머에서 온 귀한 집 도련님, 그 집안에서는 '공자님'이라 불리는 것으로 보아 지체높은 집안의 사람인 듯 하다.
키리에 아가페 그리스 토 엘레이손
Kyrie Agape Greece to Eleison
(19세)
02 - 세계관 골자
성인
남녀 모두 18세가 지나면 성인으로 인정받아 결혼이 가능하다.
약혼, 결혼
약혼은 당사자간의 합의만 있어도 쉽게 맺고 끊음이 가능하다.
결혼은 각 집안의 합의와 결혼 당사자간의 승낙이 모두 필요하다.
이혼은 합의 이혼만이 존재한다. 사별은 이혼으로 인정받지 않는다.
피치못할 사정에 의한 일방적인 이혼은 반드시 재판을 치뤄 이혼의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 사별에 관하여
사별은 신이 주신 이별로 여겨, 이혼이 아닌 종혼으로 해석한다. 종혼은 시일이 있고 1년 이후부터 재가가 가능하다. 사별한 이가 1년 내에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면 수치를 모르고 방정맞으며 예의가 없는 무례한으로 여겨진다. 약혼 중의 사별은 이러한 제한을 가지지 않는다.
귀족
3대 이상 영지를 소유하고 가주나 후계자가 군에 복무하여 일정 기간 이상 복무하거나, 참전 중 공훈을 쌓은 끝에 훈장을 받은 경우에만 귀족으로 인정되며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기본적으로 여자는 가주직을 승계할 수 없으나, 피치못할 사유(가주의 사망 혹은 남성 직계 전무 등)가 있을 경우 가주 부인에 한정하여 가주직을 승계받을 수 있다.
군인
남녀를 불문하고 입대가 가능하나, 여인은 모두 간호병으로 차출되며 전선에 배치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써 여겨졌다.
마법, 기적
전쟁에서는 크게 쇠퇴하여 실전에 한하여 더 이상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
기술의 진보에 많이 묻혀버렸으나 여전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다.
화기, 기술
수 많은 전쟁 끝에 발달한 새로운 힘.
사용법만 익히면 보편일륜적으로 사용이 가능하고 직관적이며 결과가 확실하기에 전쟁의 주역이 된지 오래되었다.
에린
도시 타라를 중심으로 거대한 바다를 마주한 나라.
해로와 해상적 요충지임과 동시에 지대 자체의 풍요로움으로 인하여 여러모로 침략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호칭
아가씨 - 세뇨리따
부인 - 세뇨라
청년 - 세뇨르
신사(중년 이상, 우대의 의미) - 돈
입양
귀족가에 마깡한 후계자가 없을 경우 귀족으로 인정받은 자(훈장 수여 등) 혹은 다른 귀족가의 차남 이하에 한하여 입양할 수 있다.
평범한 평민을 입양한 경우 기존 귀족과의 결혼이 있어야만 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연애성향
동성 이성을 구분하지 않는다.
단, 동성혼의 경우 결혼 후 15년 내에 반드시 후계자를 선정하거나 입양해야 한다.
파양, 제적
가문의 존속을 위협하거나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 판결을 통하여 해당 인물을 파양, 제적할 수 있다. 단, 해당 인물에게 폭력, 학대 등을 가한 정황이 보인 경우 이를 신청한 자가 역으로 제적당할 수 있다.
파티
입장이 있고 첫 춤을 출 때 까지, 여성은 남성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춤을 신청해서는 안된다. 여성이 남성에게 공개적으로 거절당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크나 큰 수치로 여겨지며 평판에 흠이 가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성을 지그시 쳐다볼 수 없다. 여성을 너무 빤히 바라보는 것은 품행이 바르지 않고 정욕에 빠진 머저리이며 무례한 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를 지적받았을 때 행동을 고치거나 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무뢰배로 여겨져 질타를 받는다.
여인이 검은 부채를 든 경우, 남성이 검은 부토니에르를 착용한 경우, 이들에게 춤을 권해서는 안된다. 이는 상중(喪中)이라는 의미다. 대화를 하더라도 짧게하며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불륜
이혼재판에 서는 것이 아니라면 ‘가벼운 만남’과 ‘일탈’은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단, 사생아의 경우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되 가문 계승권은 없으며 평민 양자와 같은 위치에 둔다.
정부
이혼 혹은 사별을 한 이는 정부를 들일 수도, 정부가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공식적인 혼인관계는 성립되지 않으나 불륜보다는 연인, 연애 관계로 여겨진다.
이러한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는 제 본래의 출신을 모른 채 다른 가문의 입양아가 되는 경우가 많다.
03 - 테온 가
큰 보폭과 무거운 발걸음소리가 빠르게 다가온다. 방의 주인은 그 것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꽤 귀찮은 일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들이닥치게 내버려두었다. 곧 문을 부술 기세로 쳐들어온 새카맣고 거대한 인영이 방 깊숙히 달려들었다.
“테온 후작!“
”시끄럽다. 조용히 움직여주면 좋겠는데.“
”상의 한마디도 없이 끌려온 놈한테 할 말인가?”
“동생이라고 있는 놈이 남 부르듯 후작이라고 불러젖히니 뻣뻣할 수 밖에.”
“쯧, 그래서 무슨 용건이야.”
테온 후작은 두 말 없이 편지를 건넸다. 그것을 받아든 남자는 섬세함이라고는 없는 손길로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타라 궁 사교계 초청.
왕실 데 아튼 시미니의 이름으로 테온 가의 인원을 초대하니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기를 바란다.
국왕 임페라토르 카일루스 에이레 아르비테르 드 아튼 시미니‘
한마디로 말하자면
“결혼해라.”
였다.
물론 테온 후작의 동생은 격렬히 반발했다. 가문의 장인 형이 독신인데 왜 자신이 결혼을 하느냐부터 제 인생에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하나같이 달기 싫으니 치우라는 질색까지 다양하게 거절하려 들었다. 당연하게도 테온 후작은 그 거부를 한마디도 들어주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도저히 반박하지 못할 말로 동생을 찍어눌렀다.
”나는 독신이 아니라 종혼이라는 것, 네가 더 잘 알고 있을텐데.”
“......”
“나는 그녀 이외의 그 누구와도 함께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가문을 이으려면 나라도 아이를 봐야한다?”
“사별한 자는 아이를 입양할 수 없으니 네가 결혼할 수 밖에.”
“눈에 차는 여자가 없으면.”
“내가 직접 선별해준 여자들과 선을 봐 결혼하겠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 됐다. 어디 저같은 목석만 데려오겠지.”
“일단 참가만 해라. 부인감을 고르는 건 조금 늦어도 괜찮으니까.“
동생의 눈썹이 실룩거리는 것을 흘끔 본 테온 후작은 초대장이 구겨지지 않게 봉투에 담으며 혼잣말 하듯 경고했다.
"3년 내에 정하지 않으면 선으로 결혼시킬테니 그리 알아라."
"뭐?"
"그 전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아."
"형!"
"이제 나가봐라. 일 때문에 바쁘다."
바늘조차 파고들 수 없는 단단한 축객령에 왈칵 화를 내려던 남자는 머리를 벅벅 헝클어트린 뒤 거친 발걸음으로 집무실에서 벗어났다. 활짝 열려있는 문 뒤에서 가만히 서 있던 집사와 보좌가 눈치를 보았지만 그들을 한 번 스쳐보는 일도 없이 멀어졌다.
"집사."
"예, 후작님."
"라세드 놈이 도망치지 않게 눈치 빠른 하인들로 감시하고 옷을 준비해. 재단사를 부르든 뭘 하든 왕실 파티에 참석할 수 있는 꼴로 만들어."
"그리하겠습니다."
"폴리."
"예? 아, 예. 후작님."
"검은 부토니에르를 준비해. 여느 때처럼 내가 쓸테니 잡스러운 장식은 모두 떼어라."
"...예."
04 - 우니쿠스 가
"언니! 언니이!"
해맑은 부름에 귀가 간지러워지자 여인은 쥐고 있던 수틀을 내려놓았다. 차분한 손길이 바늘을 정리할 무렵, 문을 콩콩콩콩 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렴."
빼꼼히 문을 연 갈색 머리의 아가씨는 살짝 눈치를 보듯 방 안을 보았다가, 제 언니와 눈을 마주치자 방긋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손에는 고급스러운 편지 봉투 하나가 있었는데, 누가 봐도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온 모양이구나."
"응, 왕실 파티 초대장! 오빠가 이번에는 나도 갈 수 있다고 했어요."
"어디 볼까?"
"여기!"
깔끔하게 뜯긴 봉투를 건네받은 여인은 고급스러운 편지를 펴 내용을 확인했다. 이전에는 파티에 참석할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으나, 이제는 '가문의 인원을 초대한다.'는 내용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네, 우리 플로의 정식 데뷔가 되겠네."
"꺄아!"
이미 여섯 살에 언니를 따라 사교계에 입문하기는 했으나, 정식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무래도 달랐다. 왕실 파티에서의 데뷔가 끝나면 갈색 머리의 사랑스러운 아가씨는 사교계의 '여성'으로 인정받을 터였다.
"그렇게 좋아?"
"응! 작년까지 난 못 갔으니까 너무 너무 심심했는 걸."
"응? 언니가 아는 것 과는 다르구나. 작년에 가족들 몰래 하녀들 데리고 야시장에 갔던 건 어느 집안의 아가씨였더라."
"앗, 그건 비밀인데..."
"올해 파티에 참석한 이후부터는 그런 행동을 하면 안돼. 알고 있지?"
"응. 알고 있어요."
"착해라."
여인은 자신의 동생을 가볍게 끌어안으며 다독였다. 몸이 약한 어머니 대신 자신이 돌보고 교육한 여동생은 한없이 해맑고 순진하여 사랑스러웠다. 천성이 선하여 투기가 없고 부족함 없는 환경 속에서 비뚤어지지도 않았다.
"드레스는 어떻게 할까?"
"오빠가 준비 해 뒀대요. 언니거랑 내거랑, 오빠것도."
"어머나."
여인은 두 자매의 오라비인 결벽적인 남자를 떠올리고 난감한 듯 웃었다. 오라비가 가족을 아끼는 선한 사람이기는 하나, 그 정도가 지나쳐 결혼 적령기를 한참 지난 서른이 되어서도 독신인 것은 집안의 큰 걱정거리였다.
그렇다고 가족의 정성을 거절할 수도 없으니, 참으로 골치 아픈 이야기이지 않겠는가. 여인이 곤란한 듯 웃자 어린 아가씨는 눈을 순진하게 깜박였다.
"언니도 오빠가 결혼하지 않아서 걱정이에요?"
"응?"
"오빠가 드레스 이야기 해줄 때 아버지가 그랬어요, '네 누이들을 아끼는 정성의 절반만 덜어서 결혼 상대를 구해봐라. 한심한 놈. 완벽하게 낳아 길러줬더니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구나.' 라고요."
"아버님도 참... 걱정이 된다고 좋게 말씀하시면 될 걸."
"그랬더니 오빠가 '걱정하지 마시죠, 우니쿠스 공께서 그러하셨 듯 적당한 때에 가지 않겠습니까.' 했어요."
그 말에 여인은 곤란하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세 남매의 아버지, 우니쿠스 공작은 무려 마흔이 되어서야 초혼을 치른 인물이었다. 당신은 늦을대로 늦은 장가를 가 놓고 왜 자신은 이르게 보내려 하느냐 돌려서 먹인 오라버니의 말솜씨가 아주 일품이었다.
물론, 그 말의 상대가 자신들의 아버지인 게 굉장히 곤란했으나 어머니께서 종종 농담하듯이 '너희 아버지는 정말 수준 높은 도둑이란다. 괴도에 이름을 붙이자면 너희 아버지가 될거야.' 라고 말하는 전적이 있었기에 큰 무례처럼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쯧!' 하고 가던 거 있죠?"
"어디로 가셨니?"
"엄마 있는 방이요."
그럴 줄 알았다. 여인은 소리내어 웃었고 그녀를 따라 소녀와 같은 아가씨도 소리를 내서 꺄르륵 웃어보였다.
"그럼 드레스는 소공작님께 맡기고 우리는 장신구를 골라볼까? 우리 플로스도 이제 어른이니까 귀걸이를 하고 입술 연지를 바르겠네."
"진짜?"
"그럼, 진짜로."
"꺄! 신난다!"
05 - 티나 가
"테오파니 아가씨!"
"아가씨 어디 계십니까!"
"아가씨!"
주변에서 열성적으로 찾는 부름에도 불구하고 테오파니는 숨은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집안에 큰 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근무고 나발이고 급한 일까지 전부 내팽개치고 돌아왔는데, 그 급한 일이라는게 제 결혼이라는 것을 사용인 몰래 들을 수 있었다.
결혼!
이 무슨 날벼락같은 이야기인가!
가문을 지키기 위해, 몸이 허약한 쌍둥이 동생의 계승권과 입양아로 괄시 받는 막내를 지키기 위해 군에 입대한 자신의 노력은 어디다 팔아먹고 결혼이라니!
"찾았다! 아가씨께서 저기 계신다!"
"도망가지 마십시요, 숨지도 마시고요! 로시아 아가씨도 여덟살이 지나고서는 숨바꼭질을 하지 않으셨는데 나이가 한창인 아가씨께서 이게 말입니까!"
"잔소리 하지 마."
"잔소리를 하지 않게 생겼습니까! 남작님께서 기다리시니 얼른 나오세요."
티나 남작. 제작년이 되어서야 무사히 작위를 물려받은 제 남동생의 호칭에 테오파니는 표정을 구겼다. 목숨 걸고 지켜줬더니 누나를 결혼 시장에 팔아버리려는 개자식. 걷어차든 주먹을 갈기든 한 대 먹여줘야겠다는 생각에 테오파니가 주먹을 불끈 쥐자 건장한 하인들조차 주춤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아니 아가씨를 잡아야지, 왜 다들 피하는 건가!"
"미치셨습니까?! 아가씨 주먹에 맞으면 저희도 한방이라고요!"
"맞습니다! 테오파니 아가씨가 전쟁 공훈으로 데임 작위를 받은 거 잊으셨습니까!? 그 때문에 자작님께서 자작위를 받으셨지 않습니까! 저 주먹에 맞으면 저희도 죽는다고요!"
"죽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가씨, 그 주먹은 좀 펴시고..."
테오파니가 단련된 몸을 긴장시키자 뒤늦게 몰려든 하인들마저도 두려움에 마른 침을 삼켰다. 아니, 왜 아름다운 여인을 앞에 두고 남자들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가. 이게 맞는 것인가?테오파니가 당장이라도 맹수처럼 포위망에서 벗어나 튀어나가려는 순간, 지팡이로 바닥을 탁! 소리 나게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테오파니 에스포사!"
보통이라면 절대 불리지 않을 세례명에 움찔한 테오파니가 손에 힘을 풀자 눈치 빠른 하인들이 달려들어 테오파니를 붙잡았다. 이거 안 놔? 하는 반항적인 목소리가 있었지만 죄송하다는 여러 사람의 말에 묻혀버렸다.
"라스!"
"티나 자작이라고 불러. 아무리 누이라고 해도 지킬 건 지켜야지."
"너, 내가 작위를 쥐어준 건 생각도 안 하고 날 결혼시장에 팔아 치우려고 해?"
하인들은 자신들이 제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으로 들썩이는 테오파니에 질린 기색으로 떨었다. 진짜로 나가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불안감에 찬 눈빛이 서로를 바라보았으나 이를 지켜보던 티나 자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팔아 치우기는 무슨. 이게 누나한테 가장 좋은 길이라는 걸 왜 몰라."
"모르긴 뭘 몰라, 이 개자식아."
"모르지. 그러니까 지금 고집을 부리는 거 아니야."
"이 자식이......!"
"누나가 결혼하지 않으면 나도 결혼 못 해."
"뭐?"
"미혼의 여성은 죽을 때 까지 가문에 속하며 가문의 보호를 받는다. 몰라? 최초의 여성 장교에 데임 작위를 받은 시누이가 있는 시골 가문에 오겠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그러니까......"
"나도 장가 좀 가자."
테오파니는 어이가 없어서 이를 악물었다. 이 자식이 물에서 꺼내주고 보따리도 챙겨줬더니 인생도 책임지라고 하는 격이지 않나. 죽빵이라도 한 대 갈기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았......
"그리고 로시아도."
"어?"
"로시아 올해 열여덟이야. 누나가 사교계의 보호자가 되서 애를 결혼시키고 지켜봐도 모자랄 판에 애 혼자 결혼시장에 보내야되겠어?"
"누굴, 뭐?"
"다시 말해줘?"
"그 어린애가 벌써 열여덟이라고?"
테오파니는 넋이 나간 듯 되물었다. 세살배기 귀족아이보다도 작고 빼빼 말라 비루먹은 얼굴로 살려달라 웅얼거리던 조그마한 아이가 벌써 열 여덟이라고? 라스는 한숨을 쉬며 지팡이를 두드렸고, 하인들은 눈치를 보며 테오파니를 놓아두었다.
"심지어 누나, 너랑 사교계 파티에 참석해서 같이 데뷔 할 거라고 신나있는 상태거든. 그런 애한테 안 간다고 한 번 해봐."
"......"
티나 자작은 한숨을 쉬며 제 누이 앞에 몸을 낮췄다.
"시늉만 해."
"뭘."
"결혼하려는 시늉만. 내가 먼저 결혼하면 누나 하고 싶은 대로 해."
"결혼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여성 장군이 된다고 해도 밀어주려고?"
"못할 게 뭐야."
최초의 장군이 나오면 우리 집안은 더 잘 살겠지. 누나가 데임 작위를 받은 덕분에 우리 집안이 얼마나 폈는 지 알아? 티나 자작은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그래."
"그럼 일단 한 대 맞자."
"뭐!? 잠깐, 얼굴은 안돼!"
필사적인 단말마(...)에 힘입에 얼굴만은 사수하는데 성공한 티나 자작의 소식은 쇼핑을 끝내고 돌아온 티나 가의 입양아이자 막내인 로시아에게 금방 전해졌다. 촉새 같은 하녀들이 물어다 준 소식에 예쁘게 들고 있던 신상 부채까지 떨어트린 티나 가의 막내 아가씨는 제 언니의 방을 왈칵 열어 젖혔다.
테오파니는 가주이자 남동생인 남작을 쥐어박은 죄로 방에 반 강제로 감금되어 있었다. 좋은 게 좋은거라는 셈 치고 침대에 아무렇게나 늘어져있던 그녀는 막내동생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언니!"
"로시? 세상에, 너 진짜 로시아 맞아?"
"꺄악! 언니! 너무좋아! 나랑 파티 참석하러 온 거지!"
그거 아닌데. 내 남동생, 네 오빠한테 속아서 온 건데. 티니는 가슴 속에 담긴 진실을 말할까 말까 고민했으나 차마 입으로 뱉을 순 없었다. 그녀는 유독 자신이 주워 온 막내 동생에 이겨먹질 못했던 탓이다.
"어.... 응."
"뭔가 대답이 이상해."
수상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는 로시아의 눈빛에 테오파니는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 귀여운 막냇동생이 삐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눈치를 보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파티 준비하고 왔다며?"
"준비는 무슨, 그냥 드레스나 좀 본거지."
테오파니의 품에 안겨서 종알거리는 로시아의 모습은 예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자신이 참전하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과 인사하던 그 때의 모습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언니 드레스부터 볼 걸! 그러고보니...... 헉, 이게 뭐야! 언니 몸에 상처가 왜 이렇게 많아!?"
"전쟁에서 구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심지어 피부도 탔어! 이거 화상 아냐!? 이래가지고 파티에 가면 인디아 사람이 왔느냐는 말 들어!"
"로시아, 그거 인종차별이야."
"아무튼!"
그거 진짜로 조심해야 하는데,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테오파니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로시아는 재빠르게 방의 종을 울렸다. 종소리를 듣고 온 하녀들에 '언니 피부부터 다듬자. 파티까지 고작 한 달 하고도 반 밖에 안 남았으니까 지금이라도 빡세게 꾸미는 수 밖에 없어. 할 수 있지?' 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하녀들은 로시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테오파니에게 몰려들었다. 그녀가 군에 입대하기 이전, 어릴 때 부터 가문에 있었던 노련한 하녀도 몇 있었기에 테오파니는 어어 하면서도 하녀들의 손길을 피할 수 없었다.
"일단 밀겨가루로 뽀득뽀득 씻기고 피부 상태 좀 알려줘. 심하면 내 향유랑 크림 다 써도 좋아."
"네 걸 써?"
"그럼 오빠 걸 쓸래?"
"아니 그건 좀......"
"우리 언니 몸은 좋으니까 드레스는 뭘 입혀도 태가 살겠어. 오늘 내가 다녀온 살롱 카테고리 좀 가져올래? 드레스 좀 봐야겠다."
"아니, 로시? 막내야? 로시아?"
"언니, 내가 올 때 까지 잘 씻고 있어!"
"잠깐.....!"
06 - 아튼시미니 가
화사한 집무실, 보통이라면 바람이 거슬려 닫아두었을 테라스의 문을 활짝 열어둔 금발의 미남자는 속 모를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기울고 어둑한 밤이 몰려드는 광경이 왠지 모르게 숨이 막힌다면 착각일까.
"전하."
"...... 이상한 일입니다."
"불안하신 게 당연합니다."
"아뇨, 불안하지는 않습니다. 그 자는 왕위를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니 내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계승권을 주장하는 이유도, 이번 전쟁의 주역이 되어 돌아온 이유도 그저 변덕일 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를 옹립하려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보기에 나는 그런 허울 좋은 이들에게 휘둘리거나 질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보다, 폐하께서 명하시더군요."
"무얼 말입니까."
"이제 슬슬 결착을 지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기야, 혼사가 상당히 늦으셨습니다."
"원해서 늦춘 것은 아닙니다만."
"우니쿠스 가문의 세뇨리따를 의식하신 건 맞지 않습니까."
"왕위를 돈독히 하려면 공작가의 지지가 필수적이기는 하니까요. 신시엘라크는 협력관계이기는 하나 표면적으로는 중립이고 그 집안의 아가씨는......"
"아직 어린데다 심하게 괴짜이지요."
"감히 그리 말할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저도 제 동생이 특이한 것 정도는 압니다."
"하하하. 그리 말하면 제가 경의 동생을 욕한 것 같지 않습니까."
"누이에게는 비밀로 하죠."
짧게 웃음을 이어 간 사내는 부드러운 의자에 몸을 묻었다. 가볍게 웃었음에도 불안함과 먹먹함이 찰랑거렸다. 이것이 정적 아닌 정적의 귀환으로 인한 불안함인지 그도 아니면 평생의 반려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인한 염려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올해의 사교계만큼 소란스럽고 요란하며 사건사고가 넘칠 시기는 없으리라는 점이다.
"그러고보니 우니쿠스 가문의 둘째 따님이 이번 시즌에 데뷔한다고 하더군요."
"아, 그 강아지 같던."
"그 집안의 막내인 세뇨리따를 마지막으로 보셨을 때가 여섯살이었으니 그런 감상이 가능하신 건 압니다만, 레이디를 그리 평하면 안됩니다."
"방금 경은 자신의 동생을 괴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제 동생이라서 가능하지요. 전하께서는 어디까지나 타인이시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런."
부러 한 말이면서 실수했군요, 하며 웃음짓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 왕자를 보며 신시엘라의 장자이자 후계자인 이는 보석과도 같이 찬란한 눈동자를 가볍게 찡그렸다.
"그럴 일은 없지만, 우니쿠스의 막내가 전하께 연심을 표하면 어찌 하실겁니까?"
"하하, 그럴 일이 없다는 건 경이 더 잘 알텐데요."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습니다만."
"제 여동생이 왕실과 연을 맺겠다는 걸 세뇨르 파르스가 가만히 있을까요?"
"......"
그럴 리가. 왕실과 우니쿠스 가문 사이의 태중 혼약이 강제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라며 사상 최초로 약혼을 재판에 회부하여 세뇨리따 이스를 자유롭게 만든 인물이 바로 그 파르스 사체르 에데사 데 우니쿠스다.
고작 열 다섯살에 왕실을 상대로 대놓고 강짜를 부리고 재판을 세우고 덤벼들던 괴짜 중의 괴짜, 시스콤 중의 상 시스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이번에야말로 왕자 하나를 죽여 치워버리겠다며 칼을 갈지 않으면 다행이다.
"지금의 내가 할 일은 '그 자'가 공작 가문과 혼맥을 이어 결탁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거리를 벌리는 일입니다. 내 결혼이야...... 어찌되었든 되지 않겠습니까."
"인륜지대사를 그렇게 가볍게 표현하시면 안됩니다."
"그렇게 잔소리 하는 경도 아직 미혼이지 않습니까."
"아직은 적령기이니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늦어도 한참 늦으셨으니 얼른 좋은 분을 만나셔야지요."
"이런, 부왕과 같은 잔소리를 하는군요."
07 - 고르도슈 가
파도가 밀려든다. 제 아무리 감성을 가지지 않는 이라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숨 막히는 파도의 비명이 쏟아진다. 검고 붉은 눈을 한 사내는 까맣고 어두우며 무한히 이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술잔을 늘어뜨렸다.
기울어진 표면을 따라 쏟아지는 술이 바닥을 흠뻑 적시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방치한다. 등 뒤에서 들리는 인기척에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눈을 느리게 깜빡인다.
침묵이 질문이라도 되는 듯, 뒤에 선 이는 조금 짜증스러우면서도 충성스럽게 입을 열었다.
"날이 개어서 글피에는 도착할 모양입니다."
"아쉽게 되었군. 폭풍이라도 불었다면 좋았을 것을."
"폭풍이 불었어도 시간 안에는 도착했을 겁니다. 뭐든지 최악의 상황이 되었으면 하는 지독한 취향 좀 어떻게 하시죠."
"......"
"쯧."
불경하게도, 대놓고 혀를 차며 물러가는 수하의 행동에도 사내는 미동조차 없었다. 저딴 것 하나 하나에 반응해주기에는 너무나 시시하고 지루한 탓이다.
원하는 것이 없는 삶이었다. 지루하고 시시하며 흥미라고는 찾을 수 없는 지겨운 생을 꾸역꾸역 이어붙여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고문과 같았다.
왕의 혈통이니 왕위 쟁탈이니 하나같이 같잖았다. 원해서 타고 난 혈통이 아니며 바라서 쥔 힘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두가 내려보는 버러지로 태어났다면 악귀와 같은 호승심이라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공허했다.
왕실의 오랜 근심 중 하나였던 중앙 해역의 전쟁을 끝내버린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본래였다면 그 전쟁은 몸집을 불려 더 큰 전쟁으로 자랐어야 했다. 자신은 그 안에서 수 많은 버러지들 중 하나처럼 죽어 나자빠지면 그만이었다.
"......"
빈 잔을 바다에 던진 남자는 무겁게 돌아섰다. 바다에서의 전쟁은 끝이 났다. 하지만 지상은 어떠한가? 소규모의 국지전은 국경을 맞대고 적잖게 발발하고 사그라들었다.
바다와 달리 지상은 시신과 잔해를 숨길 구석이 없으니 지금보다도 더 처절하고 지독하리라.
왕의 같잖은 부름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 가며 자신을 수도에 묶으려는 버러지들의 시답잖은 수작 따위도 눈에 밟히지 않았다. 적당히, 거슬리지 않을 만큼만 무시하다가 전장으로 떠나면 그만이다.
왕의 부름 따위야, 이전의 전쟁 중에는 바다에 버려 치웠던 것과 같이 불에 태워 치우면 그만이라. 베임네크는 지상의 업화가 자신을 불사르고 잡아먹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워버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08 - 길드 나인게이트
넓고 어두운 공간에 띄엄띄엄 달린 램프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가지각색의 키와 덩치, 체형을 가진 이들이 원하는 자리에서 몸을 편히 둔 채 대화에 집중한다.
"이번 일은 망치지 마."
"그 무슨 섭섭한 말을. 누가 들으면 내가 항상 일을 망치는 줄 알겠어."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그럼?"
"뻔뻔하기는! 위빙, 너는 네가 손 대는 것 외에는 싹 다 망쳐놓는 걸 좋아하잖아. 그거 진짜 개같은 취향이거든?"
"원래 이득은 독식하는 게 좋은 거잖아?"
"재수없어라."
혀를 내두르며 질색하는 반응에 간드러지는, 상당히 능글맞은 남자의 웃음소리가 따라 붙는다.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여유롭게 펼쳐진 합죽선을 부치는 솜씨가 일품이다.
"그래도 걱정할 것 없어. 이 곳은 굳이 실적으로 고생할 곳 없는 땅이잖아?"
"그렇긴 하지. 마 뭐시기 하는 놈들이 있긴 하지만 별 것 아닌 것 같던데?"
"그렇게 까불다간 목이 잘릴걸."
키들거리는 협박소리에 자기가 당할 일이 있겠느냐며, 죽는 건 자신이 아니라 허세를 부리는 목소리가 괄괄했다. 그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없었고 하나같이 놀리거나 한심해하는 반응들이 이어졌을 뿐이다.
"아무튼, 여기 인간들은 생각보다 심심하게 살더라."
"그러니까 장사할 건덕지가 많은 거지."
"적당히 해 먹어. 멍청하다고 해도 이 나라에서 오래 묵은 놈들이 만만한 건 아니야. 괜히 부딪치면 이쪽만 손해라는 걸 기억해."
"하긴, 이쪽은 수가 압도적으로 적으니까."
"소수정예인 셈이지."
"네가 그런 고급 어휘도 쓸 줄 알아?"
"좀 괜찮아보이지?'
"아니, 심하게 어색한데. 차라리 평소처럼 굴어."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누군가는 부채를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냐는 질문에 붙들리자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웃어보였다.
"내일 귀한 고객님의 부름이 있거든."
"아 그러셔."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눈빛은 아니었다. 호기심과 흥미가 가득한 눈빛이 따라붙자 입을 가리던 부채를 내려 어깨를 두드린 '위빙'은 자신의 길드원들에게 여유롭게 속삭였다.
"그럼, 각자 알아서 잘 하고 약속 날에 보는 걸로. 비상연락은 언제나 열어두기를 바라."
"아, 우리랑 같이 온 도련님은 어떻게 할거야?"
"그러고 보니. 그 존재감 없는 도련님은 어떻게 처리할건데?"
"상관없어."
"어?"
"살고 싶으면 알아서 행동할테니까. 그정도 눈치는 있거든, 그 도련님."
"그래?"
"뭐, 위빙이 그렇게 봤다면 그런 거겠지."
"그럼 해산?"
"해산~ 얼른 가서 일이나 하자고."
길드원들이 떠드는 말을 뒤로 한 채 어둠속에서도 불을 밝힌 듯 여유롭게 나아가던 위빙은 달빛이 드는 골목에 나와 부채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자, 슬슬 한 탕 해보실까."
09
“치워.”
“도련님, 이건 아주 기본의 기본적인 악세사리입니다. 이 것까지 안 하시면 가난한 사람으로 보여질 겁니다.”
“남이 무슨 생각을 하든 알게 뭐야. 개수작 부리지 말고 치워.”
”가주님께서 반드시 격식에 맞는 옷을 완벽하게 정장하시라 명하셨습니다만.“
“... 씨발.“
”여기서는 무어라 하셔도 좋습니다. 허나 세뇨리따 되시는 분들 앞에서는 그러하시면 안됩니다. 여인들은 심약하기 마련이니까요.“
집사의 어르고 달래는 말과 나이가 찰 대로 찬 도련님의 고집이 실랑이처럼 이어진다. 옷 시중을 드는 풋맨은 눈치를 보듯 절절매다가 집사의 턱짓에 못 이기는 척 옷장식을 달기 시작했다. 치렁치렁한 장식이 거추장스러워 뜯어낼 기세로 노려보았으나 반짝이는 보석이 산산조각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 되었습니다.”
정장을 마친 채 거울을 마주한 남자는 미간을 왈칵 찡그렸다. 옷 태는 누가 봐도 귀족적이었지만 날짐승같은 사나운 기세 때문인지 전혀 신사같지 않았다. 거울을 불퉁하게 노려보던 그는 멋지게 넘겨두었던 머리를 헤집어 앞머리를 내렸는데, 그 광경을 보고 머리모양을 잡아두었던 풋맨 하나가 헉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어차피 여자들은 외눈박이 짐승새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테온 가의 차남, 살투스 남작이라면 말이 다를겁니다.“
”결국 같잖은 집안과 돈만 본다는 소리군.“
”......“
집사는 별 다른 대꾸 없이 빙긋 웃었다. 그의 유모가 살아있었다면 ‘오, 디오스 미오! 도련님, 그런 말은 속으로만 하셔야지요!’ 라며 펄쩍 뛰었을 터였다. 허나 테온 가의 두 사내를 훌륭하게 키워낸 성격 좋고 유쾌한 여인은 이 집의 안주인과 함께 먼 곳으로 떠나버린지 오래 되었다.
“도련님께서도 가정에 안착하실 때가 되었지요.“
”사랑인지 뭔지 구걸해대는 여자들은 질색이야.“
”그렇다면 독립적인 여인은 어떠십니까.“
지금 말 장난하는 것 같으냐며 거울 속 사내가 눈매를 일그러트렸다. 집사는 본 것도 못 본 척 능청스럽게 시선을 처리했다. 부스스해진 앞머리의 일부를 빗으로 정돈하는 풋맨들은 더 할 나위 없이 간담이 서늘했지만 손을 멈출 순 없었다.
"좋은 인연을 만나실겁니다."
"같잖은 소릴."
이제 그만 하라는 듯, 들러붙는 손들을 벌레 쫓듯 쳐낸 남자는 거칠게 돌아섰다. 집사는 그런 도련님의 뒤를 능숙하게 따랐다.
앞서 정문으로 내려가던 남자는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멀끔히 선 제 형을 노려보았다. 형수가 죽은 지 어언 10년이 되었건만, 그는 가슴의 검은 꽃을 내려놓지 못했다.
행복한 결혼의 처참한 말로나 다름 없는 꼴을 해 놓고 자신 보고는 결혼을 하라니. 불행의 되물림이라도 받으라는 건가 뭔가. 울컥 짜증이 솟아 사나워진 눈빛에도 테온 후작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꼭 그렇게 상복처럼 입어야겠나?"
"왜, 공작새처럼 온갖 색으로 도배했어야 했나보지."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 드는 말투는 유독 독했다.
제 동생의 심사가 단단히 뒤틀렸음을 앎에도, 테온 후작은 두 말 없이 등을 돌려 나아갔다. 남자는 당장에라도 이 귀찮은 옷을 다 집어 던지고 싶은 욕구를 꾹 눌러 삼키며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거대하고도 튼튼한 마차에 오른 두 남자는 허리를 숙여 배웅하는 집사를 외면한 채 서로를 마주보았다. 상석에 앉은 테온 후작의 눈은 피곤함과 지겨움에 침잠해 있었고, 그 맞은편에 앉은 살투스 남작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창가에 기댄 채 눈을 감아버렸다.
침묵과 불편함으로 무장한 마차는 등이 시렵다는 생각을 하는 마부와 유난히 긴장한 말들의 힘으로 왕실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갔다.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했을 때 출발한 마차는 노을이 드리워질 즈음 왕실에 도착했는데, 그들의 앞으로는 이미 파티를 향하는 수 많은 마차로 길목이 가득 찼다.
가문의 위상이 있기 때문인지, 줄줄이 선 마차들을 옆으로 스치며 나아가던 테온가의 마차는 저들보다도 지체 높은 가문의 마차의 뒤로 멈춰섰다.
보통은 후작 가문보다 높은 가문이 흔치 않았으므로, 마차가 멈춰섰을 때 테온 가주와 그의 동생은 마차의 도착여부를 확인했다. 어정쩡한 자리에 멈춰 섰다는 것을 눈치 챈 두 사람이 곁창을 통해 마부를 불렀다.
"무슨 일이지?"
"앞에 우니쿠스 가가 있습니다."
"콧대 높으시기로 유명하신 집안이군. 테온 후작께서는 그 집안의 소공작과 친구였지 않아?"
"그 치가 제 멋대로 친우라 부를 뿐, 아무 관계도 아니야."
그러시겠지. 제 형의 꽉 막히고 답답하며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을 아는 살투스 남작은 비웃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말 편자의 맑은 쇳소리와 바퀴의 가벼운 덜컹거림을 뒤로, 앞 서 있던 흰 마차의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성화와도 같은 눈부신 미남자의 모습에 벌써부터 경탄의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결벽적일 정도로 흰 수트와 그를 꾸민 호화스러운 보석들이 노을 아래에서 더할나위 없이 눈부시게 빛났다.
살투스 남작은 우니쿠스 소공작의 재수 없는 꼴을 오래 보는 취미가 없었으므로 순식간에 커튼을 내려 창을 가렸다. 테온 후작 또한 우니쿠스 소공작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약간의 무례는 못 본 척 덮어두었다.
앞의 마차가 떠나 자리를 비우고 나서야 앞으로 향한 테온가의 마차가 드디어 자리에 멈춰섰다. 마부가 곁창을 정중하게 두드려 도착을 알리자 살투스 남작은 우리에서 벗어나는 짐승처럼 빠른 몸놀림으로 마차에서 벗어났다.
한숨과 함께 살 것 같다는 기색으로 어깨를 펴는 동생을 무시한 채 마차에서 내린 테온 후작은 자신들을 향해 몰려드는 끈적한 시선에 미간을 왈칵 구겼다.
"염병할."
"참아."
"싹 벗겨다 핥아 먹을 기세인데, 이 빌어먹을 걸 참으라고?"
"싫으면 선을 보든지."
썩을. 짜증스럽게 욕지기를 중얼거린 살투스 남작은 제 형을 뒤로 한 채 빠른 걸음으로 연회장을 향했다. 안이나 밖이나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을 아는 테온 후작은 피곤함에 젖은 미간을 주물렀다. 자신을 보호하듯 왼쪽 가슴에 꽂힌 검은 꽃이 오늘따라 유난히 시들시들하게 느껴졌다.
'적당히 자리만 지키다가 떠나야겠군. 라세드는 내가 없으면 바로 도망칠테니 적당히 탐색을 마칠 정도로... 세 시간이면 되겠나.'
홀로 일정을 고민하던 테온 후작은 눈치를 보듯 서 있는 마차에게 떠나라는 신호를 준 뒤 연회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유난히 가라앉는 기분을 추스를 틈이 없었다.
거대한 왕실의 홀을 지나 야외로 난 복도를 가로지르며 나아가던 테온 후작은 옅게 불어오는 후덥지근한 여름 바람을 느꼈다. 바람이 불어드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자 노을의 타오르는 빛을 받은 채 자리를 지키던 근위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덜 여문, 청년과 사내의 기로에서 어정쩡하게 선 어린 남자.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테온 후작을 보다가 실례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듯 후다닥 시선을 거두었다.
귀족이 신기하기는 한 모양이겠거니. 그리 생각한 후작은 고개를 푹 숙인 근위병의 귀가 노을보다도 붉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우니쿠스의 막내 아가씨, 플로스 유니케 에데사 데 우니쿠스는 당장에라도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자신의 언니, 이스 아우로라 에데사 데 우니쿠스와 팔짱을 마주 낀 채 가볍게 걸었다. 작년까지라면 제 언니를 에스코트 했어야 할 오라비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 걸으며 느긋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
"응! 너무너무 좋아. 신나서 날아갈 것만 같아!"
"이런, 누이가 날아가지 않게 내가 잘 지켜봐야겠군요."
농담을 받아치는 오라비의 목소리에 꺄르륵 소리 나게 웃은 플로스는 자신이 기대었음에도 몸가짐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우아하게 걷는 언니를 올려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은, 성화에 나오는 천사 혹은 성인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가진 백색의 여인은 자신을 보는 동생의 시선에 눈을 마주해주었다.
"왜 그러니?"
"언니 오늘 너무 예뻐."
"플로스도 오늘 너무 예쁜 걸."
"언니랑 오빠가 꾸며준 거니까 예뻐야지. 나는 오늘 세상에서 제일 예쁠 거야."
"언니보다도 더?"
"음... 언니랑 똑같이."
장난스러운 질문이었건만, "언니보다도 더." 라는 말은 하기 싫은지 입술을 작게 우물거리다가 하는 말이 깜찍했다. 이스는 그 귀여움에 입술을 가리며 웃었고 파르스는 주변이 환해지도록 활짝 웃고 말았다.
두 사람의 미소와 웃음에 주변 사람들이 넋을 놓고 쳐다보든 말든, 파티장의 입구에 도착한 세 사람은 눈부시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넋이 빠진 시중인을 돌아보았다.
"이런."
정신을 못 차리는 군. 혼잣말을 한 두 여인의 오라비는 시중인의 눈 앞에서 장갑 낀 손을 튕겼다. 딱! 소리와 함께 헉 놀라 정신을 차린 시중인은 실례했다는 사과와 함께 허리를 푹 숙였다.
사과는 됐으니 입장을. 자연스럽게 하대하며 명령하는 차가운 목소리에 시중인은 허리를 곧게 펴고 목을 풀었다.
“브뤼온 백작, 그라츠의 영웅, 리예스 경계의 제독, 백금(플래티넘)훈장의 주인, 파르스 사체르 에데사 데 우니쿠스 경과 우니쿠스 가 일원 영애들 드십니다!“
쩌렁쩌렁한 외침에 깜짝 놀란 플로스가 귀를 막자 그녀의 언니는 푸스스 웃으며 많이 놀랐느냐 속삭였다.
”트럼펫을 귀 옆에서 부는 것 같아!“
”그럴거야. 저 사람은 입장을 알리는 것만 연습하고 익혔기 때문에 목소리가 크거든.“
“대단해!”
“그렇지?”
신기함에 약간 흥분한 동생을 진정시킨 이스의 뒤에서 파르스는 금화 하나를 꺼내 시중인에게 가볍게 튕겨주었다. 수고비 치고는 굉장한 값이었으나 아깝다는 눈빛조차 없었다. 굉장한 격려에 힘입은 이가 다음은 더 우렁차고 멋진 소개를 해 보이겠다는 다짐을 하든지 말든지, 안으로 들어선 세 사람은 순식간에 쏟아지는 눈빛을 온 몸으로 받아내었다.
보통이라면 숨이 막혀 움찔거릴 법도 하건만, 플로스는 처음 받아보는 시선에도 그다지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 언니를 따라 사교계 나들이를 다니면서 이만한 시선들은 자주 겪어본 탓이었다. 이제 와 긴장하기에는 여지껏 경험한 일들이 있으니 그다지 간지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플로스는 자신과 언니보다 등 뒤의 오라버니를 향해 몰려드는 시선에 장난스레 웃었다.
“와, 우리 오빠 인기쟁이구나?“
”이런. 들켰나?”
“오빠랑 얼른 떨어져야겠다. 시선이 따끔따끔해.”
“그럼 그럴까?”
“오, 이런. 이제 둘이 있다고 나를 버리는 겁니까 누이분들?”
“그럴리가요. 오라버니가 더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게 잠시 비켜드릴 뿐이랍니다.”
“맞아요. 오빠... 아니, 오라버니는 서른이잖아요! 얼른 장가 가야죠. 아...버지도 그랬는 걸요? 오라버니가 늦지 않게 얼른 가면 소원이 없겠다고요.”
빌어먹을 늙은이. 파르스는 이마 위로 삐죽 솟으려는 혈관을 내리누르며 여상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조카도 얼른 보고싶고요.“
”맞아!“
두 여동생의 조카 발언에 미소가 굳어버린 파르스는 그대로 두고서 이스와 플로스는 소로리티 일원들이 모여있는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살투스의 남작, 아라드의 전신, 라세드 솔루투스 아케론 폰 테온 경 드십니다!“
시중인의 우렁찬 외침에 호기심이 든 플로스는 뒤를 바라보았다. 보통은 살짝 보고 말았을 것이나, 제 오라비와 어깨 높이가 비슷한 남자는 흔치 않았으므로 조금 유심히 봤을지도 모른다. 새카만 정복 위로 금으로 된 장식을 투박하게 얹은 남자는 저를 향하는 시선들이 짜증스러운 듯 사나운 기색이 역력했다.
주변의 여성들이 그를 두고 테온가의 야수, 세게드의 악몽이라 부르며 수근거렸지만 귀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그저 홀린 듯 멍하게 바라보는 플로스의 시선을 느낀 듯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을 때. 레몬빛 눈동자를 본 라세드는 구겨진 표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고작 3, 4초가 지났을까. 여전히 라세드의 앞전에 서 있던 파르스는 낮게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주었다. 그에 퍼뜩 정신이 든 라세드가 표정을 다듬고 눈길을 치웠음에도 플로스는 그 자리에 서서 라세드를 바라보았다. 뒤늦게 이상함을 눈치 챈 이스가 제 동생을 부르며 주의를 돌리고 나서야 레몬빛의 시선이 떨어졌다.
“언니, 저 사람 누구야?”
“저 사람이라면...”
“오빠 옆에 지나가는 저 까만 사람.”
“아, 테온 대령 말이구나.“
”대령? 군인이야?“
”지금은 아닐거야. 전쟁 중에 눈을 다쳤거든.“
”아.....“
”왜, 마음에 드니?“
”조금.“
수줍은 목소리로 소근거리는 동생의 목소리에 이스는 부채를 든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세상에, 제 동생에게 첫 사랑이 너무 빨리 찾아온 것은 아닐까? 첫 입장부터 눈에 드는 사람이 생기다니. 이걸 다행이라 해야할까, 불행이라 해야할까.
”테온 대령은 스물 일곱인데도?“
”춤 추는 건 나이랑 관계 없잖아.“
”어머나.“
춤 춰보고 싶었구나? 장난스러운 질문에 플로스는 뺨을 붉히며 뽀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는 심술쟁이야. 투덜거리는 듯한 말에 쿡쿡 소리내어 웃던 이스는 플로스의 귀에 가볍게 속삭였다.
“언니가 가르쳐 준 거, 잊지 않았지?”
“부채 쥐는 법?“
”테온 대령을 보면서 눈이 마주칠 때 보여주는 거야.“
”부끄러운데...“
수줍은 듯 작아지는 목소리를 듣고 있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제 막 사교계에 발을 들인 어린 소녀가 신사와의 첫 눈맞춤에 설레는 일이야 흔하고도 귀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만남으로 결혼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으므로 모두가 호의적인 눈빛을 보였다.
“테온 대령의 남은 눈이 멀쩡하다면 세뇨리따를 거절하지 않을 거에요.”
“그럼요.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아무렴, 테온 대령이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 정도는 받아줄거에요.“
살살 등을 밀어주는 목소리들에 플로스가 우물쭈물 언니를 보자 이스는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주변 여인들의 응원과 언니의 허락에 용기를 얻은 플로스는 수 많은 군중들 속에서 홀로 머리 하나가 튀어나올 만큼 거대한 사내를 살금살근 훔쳐보았다. 그는 귀찮다는 듯 이쪽은 한참을 쳐다보지 않다가 플로스의 애가 탈 때 쯤에 눈을 마주쳐줬다. 급한 마음에 부채를 펴던 어린 아가씨는 부채 끝을 두드릴 자리를 실수해 콧등이 아닌 입술로 두었는데, 그 제스처에 놀란 라세드는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고개를 홱 돌리고 말았다.
“읏...!”
실수했어! 잔뜩 연습했는데! 울망거리는 플로스를 웃으며 달래는 이스와 여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테온 대령, 라세드는 쿵쾅거리는 제 흉통을 꽉 눌러 진정시켜야만 했다. 요즘 세뇨리따들은 좀 대담한 경향이 없지 않다더니, 눈 한번 맞춘 아가씨가 제게 키스를 요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싫은 건 아니었으나 덥석 다가가면 제가 짐승같은 새끼라며 경멸당할까 싶어 일단은 눌러 참았다. 그럼에도 화끈거리는 귀는 어찌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삽질 아닌 삽질을 하는 사이, 소개 없이 조용히 파티장에 들어선 테온 후작은 제 동생이 머저리처럼 귀를 시뻘겋게 물들인 채 뻣뻣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뭔가 익숙하면서도 기분나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던 그의 어깨에 흰 장갑을 낀 손이 얹혔다.
“오랜만입니다. 필레인.”
“... 그렇군요. 우니쿠스 소공작.”
“저건 무슨 일로 참석시킨 겁니까.”
저거. 라고 불린 제 동생을 짧게 본 필레인은 제가 느낀 기분 나쁨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것은 사랑에 빠진 혈육을 보았을 때의 떨떠름한, 좀 거북하고 보기 싫은 방향의 기분 나쁨이었다. 여자든 남자든 저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역겹다니 뭐니 지겨워하는 것도 모자라 왕실 앞에 도착했을 때는 살기마저 품었던 놈이 한눈에 반할 만한 사람이......
“경의 동생입니까?”
“빌어먹게도 그런 것 같군요.”
웃는 듯 다정한 목소리였으나 그 안에 들어 찬 감정은 분노가 가득했다. 확정 어린 대답에 어이가 없어져버린 필레인은 파티장을 죽 둘러보았으나 파르스의 여동생, 세뇨리따 이스는 라세드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옆의 다람쥐처럼 조그마한 아가씨 하나가 라세드를 향해 열렬한 눈빛을 보내며 수줍어 하고 있었는데, 누가봐도 갓 성인이 된 앳된 아가씨였다.
“설마 저 세뇨리따가...”
“예, 오늘 데뷔한 제 둘째 누이이지요.”
이런 미친. 필레인은 경탄과 경악을 동시에 속으로 삼켰다. 설마 그럴리가 없겠으나 진정으로 그러하다면 정말이지...
“미치겠군.”
“동감입니다.”
심지어 두 사람 다 한 눈에 반한 것 같은데. 저런 경우에는 옆에서 뜯어말리고 떼어내고 뒤집어 엎어놔도 절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 남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테온 후작은 본인이 그러했던 것을 아주 잘 알았다. 심지어 ”테온 가의 남자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 답도 없는 머저리가 된다.“가 가문 내 명언이자 경고이지 않은가.
“죽여도 됩니까?”
“안됩니다.”
여상한 우니쿠스 소백작의 질문에 테온 후작은 지체없이 대답했다. 그가 여동생들을 끔찍히 아낀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지금 하는 짓이 좀 떨떠름하고 한심한데다 평소에는 죽어라 말도 안 듣고 성질이 더럽고 입이 걸다고는 해도 제 동생을 죽이게 둘 수는 없었다. 심지어 결혼하라는 제 요구에 즉각적으로 상대를 고를 정도로 목적에 투철(?)하고 성실한 녀석이다. 결혼으로 후사를 둬야 할 동생이 죽으면 곤란한 건 자신이었으므로 테온 후작은 소공작을 억지로 붙들었다.
”역시 죽이는 게 낫겠습니다.“
”안됩니다. 세뇨리따 플로스가 우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을텐데요.“
”....... 잠깐 우는 것 정도는 괜찮을겁니다.“
이 미친 시스콤 새끼. 턱끝까지 올라오는 욕지기를 참은 테온 후작은 ‘내 동생을 죽이면 오히여 다른 놈들이 껄덕거릴 겁니다. 녀석이 파수꾼 노릇을 하게 두시죠.’ 라는 말로 소공작을 진정시켰다.
파수꾼이라니. 소공작의 눈에 세상에 가장 못미더운 파수꾼이 있다면 그건 누가봐도 테온가의 차남이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제 여동생을 지켜주기는커녕 제가 날름 잡아먹어버릴 것 같은 놈을 믿느니 사기꾼에게 가문의 재산을 반절 떼어주는 게 더 믿음직하겠다.
턱을 악물어 힘줄이 돋아남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척 하는 우니쿠스 가의 소공작와 침착한 듯 피곤함이 역력한 테온 가의 후작을 바라보는 회장 속 사람들의 눈빛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온갖 선망과 욕망으로 끈적했다. 한 사람은 검은 부토니에르를 꽂아 거절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있으나 10년이나 지속한 탓인지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테온 후작, 필레인은 그렇잖아도 실금이 가 있던 표정을 와락 구기며 한숨을 쉬었다. 이러한 시선들 때문에 사교계를 경원시했건만. 동생을 혼인시키기 위해 강제로 참석할 수 밖에 없기는 했으나 정말이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잡아먹히겠군요.“
”동감입니다.“
“저는 슬슬 움직이지 않으면 큰일 나겠군요. 테온 후는 어쩔겁니까.”
“여느 때와 같을겁니다.”
적당히 벽의 장식으로 머무르다 테라스를 통해 도망치겠다는 말이렸다. 제 동생이 연회에서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러 왔건만, 입장과 동시에 도주의 우려가 사라졌으니 먼저 떠난다 한 들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안에서 다섯번째 테라스를 통해 정원으로 빠지시죠. 근위대가 움직이는 길이니 섣불리 말을 거는 이는 없을겁니다.”
도움 아닌 도움에 필레인은 가벼운 고갯짓으로 감사 인사를 대신했다. 우니쿠스 소공작, 파르스는 별 말씀을. 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상하게 그와 떨어져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스스로 나아갔다. 사방팔방에서 소공작, 브뤼온 백작, 제독을 불러대며 말들을 걸어오니 성가시기 짝이 없었지만 하나하나 응대하는 모습은 더할나위 없이 익숙해보였다.
그 사이 열기를 진정시킨 테온 대령, 라세드는 화끈거리는 뒷목을 주물러 진정시킨 뒤 자신에게 앙큼한 추파를 던진 세뇨리따를 돌아보았다. 뒤늦게 부채로 콧등을 덮어 수줍은 척을 하고 있지만 제게 키스를 요구하던 맹랑함이 잊혀질 정도는 아니었다. 눈도 재대로 맞추지 못하고 부끄러움에 쩔쩔 매는 것을 더욱 유심히 봤다면 아까의 제스처가 실수라는 것을 백 번은 눈치 챌 터였으나, 라세드는 테온가의 흔한 머저리가 된 탓에 뻔한 정답을 몰라보았다.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여인들의 무리 앞으로 다가간 라세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어쩔 줄 몰라하는 연갈색 머리의 세뇨리따에게 손을 건넸다. 눈 주변과 귀를 빨갛게 물들이고서 우물쭈물 하는 모습에 갈비뼈 안 쪽이 뻐근하게 꽉 조여들고 뱃속은 묘하게 근질거려 마른 침을 넘긴 라세드는 잡아달라는 듯 손을 조금 더 내밀었다.
옆에 서 있던 흰 여자-라세드 눈에는 딱히 들어오지 않았다.-가 세뇨리따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자 깜짝 놀란 듯 히끅, 소리를 내는 모습을 한 시도 놓칠 수 없었다. 저를 한 번, 내밀어진 손을 한 번 보던 세뇨리따는 부채를 접어 오른손에 쥐고서 왼손을 내밀었다. 길고 예쁜 손이 제 손바닥에 얹혔을 때 라세드는 사람의 손이 이렇게 부드러울 수도 있구나 하는 흔하고도 멍청한 감상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반지와 팔찌가 없는 손. 애인은커녕 약혼자도 없다는 순결한 손이 묘한 불을 붙였다. 라세드는 몸을 숙여 희고 예쁜 손등에 입술을 묻어 키스를 한 뒤 고개를 들었다.
"라세드 솔루투스 아케론 폰 테온, 살투스 남작입니다."
"플로스 유니케 에데사 데 우니쿠스에요."
"세뇨리따 플로스, 춤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평생동안 써먹지도 않았던 사회성과 쥐뿔도 신경쓰지 않았던 예법을 박박 긁어 모아 신사인 척 하느라 식은 땀이 났다. 옆에서 그들을 보던 이스는 제 어깨 뒤로 여인들이 소근거리는 소리를 훔쳐 들었다.
테온 가의 차남이라면 상당히 거물인데 아깝게 되었다는 질투가 일부,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는 감탄이 일부. 추억에 빠진 듯 귀여워하는 애정이 일부에 그친 것을 보아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혹여 나쁜 감정을 가진 이가 있더라도 자신과 어울리는 세뇨리따 몇이 눈치껏 대처할 터였다.
거기다 귀와 목 만큼이나 손바닥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제 여동생만을 바라보고 있는 살투스 남작의 열렬한 시선을 봤을 때.....
'위험한 일이 생길 틈을 주지 않겠는 걸.'
춤 신청에 귀를 빨갛게 물들이고서 고개를 끄덕이는 플로스를 본 라세드는 마른 침을 삼켰다. 요 몇년간 사교 춤이라고는 전혀 춰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이 조그마한 세뇨리따의 발이라도 밟는다면 대참사가 따로 없었다.
'젠장.'
형이 춤 연습 좀 하라고 했을 때 주워 섬길 것을. 제가 이런 상황에 처할 줄 알았다면 발이 부르트고 피가 나도록 춤만 연습했을 터였다. 잔소리라고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을 욕하며 라세드는 왈츠의 춤곡과 스탭을 뒤늦게 떠올려보았다.
왈츠는 느린 곡이다. 침착하기만 한다면 실수할 일은 없었다. 라세드는 전장에서도 굴린 적 없던 두뇌를 필사적으로 쥐어짜 지식을 떠올렸다. 손가락은 가지런히. 파트너의 등을 아래에서 받치듯 안고 손가락은 모두 감싼다. 스탭은 왼발부터. 중심은 가슴 밑으로. 얼굴을 지그시 보기보다 다른 곳에 시선을 두듯이.
좋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라세드와 달리 플로스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언니 오빠와 심심할 때 마다 추던 춤들이 어떤 식으로 시작하고 움직였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춤을 망쳐, 눈 앞의 세뇨르가 자신에게 실망할지도 몰랐다. 안돼! 처음으로 두근거림을 느꼈는데 한 순간에 깨져버린다면 울어버릴지도 몰랐다.
왕자님들이 입장할 때 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침착하면 할 수 있어. 플로스는 연신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가라앉혔다. 언니가 가르쳐준 것을 떠올리며 차분한 마음을 되찾으려는 찰나, 첫 춤을 알리는 전주곡이 귀를 간질였다.
플로스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배운 파티의 순서는 이렇지 않았다. 그녀는 다급히 제 언니를 돌아봤으나 그녀 또한 적잖게 놀란 기색이었다. 본래 왕실 파티는 시작 전후 30분동안 세뇨르와 세뇨리따들이 첫 춤의 파트너를 구하며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진다. 왕자는 전주가 시작되기 전에 입장하여 선약을 잡은 파트너를 에스코트한다.
중심이 되어야 할 왕자가 없이 첫 춤이라니, 부담스러워서 설 수나 있겠나. 세뇨리따들은 물론이고 세뇨르들마저 긴장으로 주춤거리는 사이 라세드는 플로스의 허리를 안은 채 성큼성큼 나아갔다. 깜짝 놀란 플로스가 잠깐 멈춰달라는 부탁을 채 하기도 전에 댄스 플로워 정 중앙에 선 라세드는 자신만만한 기색으로 제 품의 세뇨리따를 내려보았다.
”저어...”
“걱정할 것 없습니다.”
걱정거리가 산만큼 쌓였는데 걱정할 것 없다니.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눈이 동그래진 플로스를 보며 라세드는 씩 웃어보였다. 신사적이라기보다는 장난기 많은 소년같은 웃음에 가슴이 콩콩 뛰었다.
“세뇨리따는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 될겁니다.”
“네?”
“날 믿어요.”
거의 날강도, 사기에 가까운 발언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믿고 싶어졌다. 이대로 춤에 실패한다면 와앙 울고서 울보공녀라는 별명이 생겨버릴지도 몰랐지만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기왕 사고를 칠 거면 세상이 발칵 뒤집어지도록 크게 치면 됩니다.’ 라는 오빠의 말을 떠올리며 허리를 꼿꼿이 폈다.
두 사람의 당당함에 감화된 탓일까, 이제 막 데뷔한 듯한 몇 커플이 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적당한 수가 댄스 플로워에 서자 왈츠의 전주곡이 사그라들었다.
청명한 바이올린의 소리에 플로스는 몸의 기억을 따라 왼발을 딛었다. 라세드는 기억을 좇아 절도 있게 왼발을 뻗었다. 서로의 다리가 가볍게 스치자 긴장된 몸이 덜걱거렸으나 서로를 밟거나 치는 일은 없었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스탭이 이어지면서 점점 합이 맞아들자 움직임도 보란 듯 자연스러워졌다.
라세드는 부드러운 손과 가벼운 몸 만큼이나 살랑살랑, 가볍게 춤을 추며 품에서 날아버릴 듯 한들거리는 플로스에 조바심이 났다. 분명 제 품 안에 있는데 꽃씨처럼 퍼져 날아갈 것 같은 건 뭐란 말인가. 왈츠가 이어지는 내내 플로스를 더 세게 안지 않으려 인내심을 발휘하는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품 안의 파트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플로스는 익숙한 춤이 이렇게나 절도있고 힘찰 수도 있구나 하는 신기한 감상에 빠졌다. 보통 언니와는 땅을 밟는 듯 마는 듯 보들보들, 나긋하게 추는 느낌이었다. 오빠와의 춤은 그가 자신을 둥실둥실 띄워주는 재미에 항상 한번 더를 외치곤 했다.
하지만 살투스 남작은 뭐랄까.
왈츠를 추는 게 아니라 몰이사냥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아차 하면 잡힐 것 같은 느낌. 새롭고 신기했다. 쏙 빠져나가는 건 실례되는 일이지만 왠지 한 번은 폴짝 도망쳐보고 싶었다. 할까? 말까? 앳된 소녀와 같은 장난기가 발그스름한 양 뺨에 물들었다.
음악이 끝날 때를 노린 플로스의 스탭은 안타깝게도 불발로 그쳤다. 그는 전쟁에서 8년을 지낸 군인이었다. 저격만으로 네 자릿 수의 사람을 죽인 베테랑이 운동이라고는 고작 산책과 춤 뿐인 어린 세뇨리따를 놓칠 리 없었다. 플로스는 아차 할 새도 없이 자신의 몸이 뒤로 휙 젖혀지는 것을 느꼈다.
드레스 자락이 꽃처럼 활짝 피고 가라앉는 사이 눕혔던 몸이 세워지고는 세뇨르의 품 안에서 핑그르르 두어바퀴를 돌았다. 그대로 품에 폭 안긴 세뇨리따의 머리칼에 남들 모르게 입을 맞춘 라세드는 사냥에 성공한 맹수처럼 만족스럽게 웃어보였다.
잠깐의 해프닝은 놀라웠으나 마무리는 더 없이 화려했으므로 찬사에 찬 박수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이를 위에서 남들 모르게 바라보고 있던 보석안의 청년은 짧은 한숨을 흘렸다. 본래라면 1왕자, 톨비쉬가 저 자리에 있어야 했으나 그는 피치못할 사정 때문에 저 자리에 설 수 없었다. 언제 어떻게 사고를 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2왕자가 중심에 설 기회를 빠르게 방지하더라도 파티의 분위기까지 지킬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다.
“어때, 내 말 맞지?“
”그렇군요. 이 번은 운이 좋았습니다.“
”거 매정하기는. 이 정도면 운이 아니라 능력이지.“
”적당히 찍어 맞추는 정도는 저도 할 수 있습니다만.“
“한 마디를 안 지네.”
세뇨리따가 사용하는 여느 부채와 달리 상당히 크고 깔끔한 죽선을 든 남자는 상처받았다는 헛소리를 하며 슬픈 시늉을 했지만 청년은 눈길 하나 두지 않았다.
“왕자님은 어째서 이방인 따위를......”
“듣는 이방인 상처받아, 도련님.”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어디의 누구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데 뭘 보고 선선히 믿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건 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 집안에서 오냐오냐 길러진 우물 안 개구리께서 뭘 알고 나를 판단하려 드는 걸까.“
”당신이 조금이라도 불손하거나 수상하다면 바로 쏠겁니다.”
“아~ 무서워라.”